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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러운 결론(The Repugnant Conclusion): 데릭 파핏의 인구 윤리학, 총량 공리주의, 그리고 불가능성 정리

데릭 파핏(Derek Parfit)의 『이유와 인격』에 제시된 ‘혐오스러운 결론’과 단순 추가의 역설을 중심으로 총량 공리주의, 평균 공리주의, 임계 수준 공리주의, 가학적 결론, 비동일성 문제 및 아레니우스의 인구 윤리학 불가능성 정리를 심층 분석합니다.

서론: ‘인구 규모 $N$’ 자체가 도덕적 변수가 될 때

고전적인 규범 윤리학과 후생경제학의 대다수 논의는 암묵적으로 고정 인구(Fixed-Population)의 틀을 전제한다. 즉, 세계에 이미 정해진 수($N$)의 개인들이 존재하며, 윤리학의 과제는 이 $N$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자원을 공정하게 배분하거나 그들의 총 복지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 정책, 지구 자원 고갈, 출산 장려 정책, 우주 식민지 개척, 나아가 인류의 수만 년 미래를 다루는 장기주의(Longtermism)와 실존적 위험(Existential Risk)으로 시야를 넓히는 순간 이 전제는 무너진다. 오늘날 우리의 선택은 미래 세대가 ‘얼마나 잘 살 것인가(삶의 질 $u_i$)’뿐만 아니라, 미래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존재할 것인가(인구 규모 $N$)’, 심지어 ‘구체적으로 누가 태어날 것인가’까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인구 윤리학(Population Ethics)과 가변 인구 가치론(Variable-Population Axiology)의 탐구 영역이다. 1984년, 현대 영미 철학계의 가장 위대한 윤리학자 중 한 명인 데릭 파핏(Derek Parfit, 1942–2017)은 시대를 앞서간 역작 『이유와 인격』(Reasons and Persons) 제4부에서 현대 철학계에 거대한 충격을 던졌다. 그는 헨리 시지윅(Henry Sidgwick) 이래 공리주의의 가장 정통적인 정식화로 받아들여져 온 총량 공리주의(Total Utilitarianism)를 논리적으로 밀고 나가면, 우리의 도덕적 직관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혐오스러운 결론(The Repugnant Conclusion)’에 필연적으로 도달함을 증명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결론을 피하기 위해 고안된 모든 대안 이론들이 그보다 더 끔찍한 역설에 빠진다는 점이다.


제1장 고정 인구에서 가변 인구로: 헨리 시지윅의 갈림길

1.1 사회후생함수의 정식화

어떤 가능 세계(또는 인구 상태) $X$에 $N(X) \in \mathbb{N}^+$명의 개인이 존재하고, 각 개인의 평생 순(純)복지 벡터가 $X = (u_1, u_2, \dots, u_N) \in \mathbb{R}^N$으로 주어진다고 하자. 인구 윤리학에서는 중립적 복지 수준(Neutral Level) $u = 0$을 기준선으로 설정한다.

  • $u_i > 0$일 때: 개인 $i$의 삶은 전체적으로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A life worth living)이다.
  • $u_i = 0$일 때: 삶이 순수한 중립 상태에 있거나 태어나지 않은 무(無)의 상태와 동등하다.
  • $u_i < 0$일 때: 개인 $i$의 삶은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살 가치가 없는 삶(A life not worth living)이다.

비교하는 두 세계의 인구수가 같을 때($N(X) = N(Y) = N$)는 총량 공리주의(Total Utilitarianism)와 평균 공리주의(Average Utilitarianism)가 완전히 동일한 가치 순위를 산출한다.

$$W_{\text{total}}(X) = \sum_{i=1}^{N} u_i = N \cdot \bar{u}, \qquad W_{\text{avg}}(X) = \frac{1}{N} \sum_{i=1}^{N} u_i = \bar{u}$$

1.2 헨리 시지윅의 선택

그러나 인구 규모 $N$이 변할 수 있을 때 두 입장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존 스튜어트 밀이나 크누트 빅셀 같은 초기 사상가들은 1인당 평균 행복 $\bar{u}$에 주목했으나, 고전 공리주의를 완성한 헨리 시지윅(Henry Sidgwick)은 『윤리학의 방법』(The Methods of Ethics, 1874)에서 다음과 같이 통찰했다. 만약 공리주의가 추구하는 궁극적 선이 우주 전체의 쾌락 총량이라면, 우리는 기존 인구의 평균 행복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양(+)의 행복을 누리는 인구의 수 자체를 늘리는 방식으로도 선을 증진해야 한다. 시지윅은 명확히 $W_{\text{total}}(X) = N \cdot \bar{u}$를 선택했고, 바로 이 합리적 선택이 파핏의 역설을 낳는 도화선이 되었다.


제2장 파핏과 ‘혐오스러운 결론’(The Repugnant Conclusion)

2.1 세계 $A$와 세계 $Z$: 모차르트와 철학 vs. 배경음악(Muzak)과 감자

『이유와 인격』 제142절에서 파핏은 다음과 같은 두 가능 세계를 비교하는 사고실험을 제시한다.

  • 세계 $A$(고복지 엘리트 세계): 인구 $N_A = 100\text{억 명} = 10^{10}$명이 살고 있다. 이 세계의 모든 구성원은 극도로 높은 삶의 질($u_A = 100$)을 누린다. 그들은 건강하고 자유로우며, 심오한 학문적 탐구와 예술, 사랑, 그리고 파핏의 표현대로 ‘모차르트와 철학(Mozart and philosophy)’을 향유한다. 세계 $A$의 총 복지는 다음과 같다. $$W_{\text{total}}(A) = N_A \cdot u_A = 10^{10} \times 100 = 10^{12}$$
  • 세계 $Z$(극도로 과밀한 한계 생존 세계): 상상을 초월할 만큼 거대한 인구, 예컨대 $N_Z = 200\text{조 명} = 2 \times 10^{14}$명이 살고 있다. 이 세계의 모든 사람은 중립 수준($0$)을 간신히 넘는 극미한 삶의 질($u_Z = \varepsilon = 0.01 > 0$)만을 누린다. 그들의 삶에는 고급 문화나 깊은 기쁨이 전혀 없으며, 파핏이 비유한 ‘싸구려 배경음악(Muzak)과 감자(Muzak and potatoes)’만이 유일한 위안이다. 그러나 인구수 $N_Z$가 워낙 거대하기 때문에 세계 $Z$의 총 복지는 다음과 같이 계산된다. $$W_{\text{total}}(Z) = N_Z \cdot u_Z = (2 \times 10^{14}) \times 0.01 = 2 \times 10^{12}$$

$W_{\text{total}}(Z) = 2 \times 10^{12} > 10^{12} = W_{\text{total}}(A)$이므로, 총량 공리주의에 따르면 세계 $Z$는 세계 $A$보다 도덕적으로 엄밀히 더 우월한 세계이다($Z \succ A$). 파핏은 이를 ‘혐오스러운 결론(The Repugnant Conclusion)’이라 명명했다.

혐오스러운 결론의 정의: 매우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어떤 가능한 인구 집단(세계 $A$)에 대해서도, 단지 삶이 간신히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수준($u_i = \varepsilon \to 0^+$)에 불과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더라도 그 인구수가 충분히 많기만 하다면, 다른 조건이 같을 때 전자보다 더 나은 거대 인구 집단(세계 $Z$)이 반드시 존재한다.

2.2 왜 이 결론은 혐오스러운가?

이 결론이 직관적으로 강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양(Quantity)이 질(Quality)을 무한정 대체할 수 있다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적·미적 성취(모차르트와 철학)가, 거대한 양계장처럼 빽빽하게 들어찬 채 감자와 단조로운 소음만으로 연명하는 무수한 생명들의 단순 합산에 의해 도덕적으로 압도당한다는 것은 우리의 깊은 가치 직관과 충돌한다.


제3장 단순 추가의 역설(The Mere Addition Paradox): 심연으로 향하는 미끄러운 경사길

총량 공리주의를 버리면 혐오스러운 결론을 피할 수 있을까? 파핏은 단순 추가의 역설(The Mere Addition Paradox)을 통해, 총량 공리주의를 전혀 전제하지 않고 지극히 온건하고 거부하기 힘든 세 가지 직관적 원칙만으로도 똑같이 세계 $Z$에 도달하게 됨을 증명했다.

  flowchart TD
    A["세계 A: 100억 명, 초고복지 (u = 100)<br/>총 복지 W = 10^12"] -->|"1단계: 단순 추가 (Mere Addition)<br/>복지 u = 50인 100억 명을 별도 대륙에 추가"| Aplus["세계 A+: 100억(u=100) + 100억(u=50)<br/>불평등 세계, 파레토 비악화: A+ ≱ A"]
    
    Aplus -->|"2단계: 반(反)불평등주의 원칙 (Non-Anti-Egalitarianism)<br/>불평등 해소 및 총량·평균 동시 상승"| B["세계 B: 200억 명 전원 평등하게 u = 80 향유<br/>평균 80 > 75, 총량 1.6×10^12: B > A+"]
    
    B -->|"3단계: 이행성 (Transitivity)<br/>B > A+ 이고 A+가 A보다 나쁘지 않으므로 B > A"| C["반복 이행: B → B+ → C → ... → Z<br/>인구는 계속 배증하고 평균 복지는 하락"]
    
    C --> Z["세계 Z: 200조 명, 간신히 살 만한 삶 (u = ε → 0+)<br/>혐오스러운 결론 도달: Z > A"]

파핏의 3단계 논증은 다음과 같다.

  1. 세계 $A$에서 세계 $A^+$로 (단순 추가의 원칙 Mere Addition Principle): 세계 $A$(100억 명, $u=100$)에 더해, 기존 주민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 별도의 대륙에 복지 수준이 $u=50$(충분히 행복하고 살 가치가 있는 삶)인 100억 명을 단순 추가(Mere Addition)하여 세계 $A^+$를 만든다. 단순 추가의 원칙에 따르면, 기존 사람들의 복지를 전혀 해치지 않으면서 살 가치가 있는 행복한 사람들을 추가하는 것은 세계를 더 나쁘게 만들지 않는다. 따라서 세계 $A^+$는 최소한 세계 $A$보다 나쁘지 않다($A^+ \not\prec A$).
  2. 세계 $A^+$에서 세계 $B$로 (반-불평등주의 배제 원칙 / 평등 우위 원칙): 세계 $A^+$에는 $u=100$인 100억 명과 $u=50$인 100억 명 사이의 계급 불평등이 존재한다(총 복지 1조 5천억, 평균 복지 75). 이제 똑같은 200억 명이 모두가 평등하게 $u=80$을 누리는 세계 $B$를 생각해보자(총 복지 1조 6천억, 평균 복지 80). 세계 $B$는 세계 $A^+$보다 총 복지도 높고, 평균 복지도 높으며, 완벽한 평등까지 달성했다! 따라서 세계 $B$는 세계 $A^+$보다 엄밀히 더 좋다($B \succ A^+$).
  3. 이행성(Transitivity)과 반복: $B$가 $A^+$보다 더 좋고($B \succ A^+$), $A^+$가 $A$보다 나쁘지 않다면, 가치 관계의 이행성(Transitivity)에 의해 세계 $B$(200억 명, $u=80$)는 세계 $A$(100억 명, $u=100$)보다 더 좋다($B \succ A$)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 과정을 $B \to B^+ \to C \to \dots \to Z$로 반복하면, 우리는 결국 세계 $Z$가 세계 $A$보다 더 좋다($Z \succ A$)는 혐오스러운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제4장 탈출의 시도와 파산: 가학적 결론에서 비동일성 문제까지

혐오스러운 결론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 가치론이 제시되었으나, 모두 치명적인 역설에 직면했다.

인구 가치론 모델수학적 사회후생함수 $W(X)$혐오스러운 결론 회피 여부치명적 이론적 대가 및 파생 역설
총량 공리주의 (Total Utilitarianism)$W_{\text{total}} = \sum_{i=1}^{N} u_i = N \cdot \bar{u}$아니오 ($Z \succ A$ 직접 도출)양이 질을 무한 대체, ‘배경음악과 감자’의 세계 정당화
평균 공리주의 (Average Utilitarianism)$W_{\text{avg}} = \frac{1}{N} \sum_{i=1}^{N} u_i = \bar{u}$예 ($\bar{u}_A = 100 > \varepsilon = \bar{u}_Z$)‘지옥에의 추가’ 및 가학적 결론 (Sadistic Conclusion) 도출
가변 가치론 / 점근 상한론 (Variable Value)$W_{\text{var}} = f(N) \cdot \bar{u}, \ \lim_{N \to \infty} f(N) = M$예 (인구 가치에 상한 $M$ 존재)거대 인구 구간에서 단순 추가 원칙 위배 및 가학적 결론 유발
임계 수준 공리주의 (Critical-Level, CLU)$W_{\text{CL}} = \sum_{i=1}^{N} (u_i - \alpha) \ (\alpha > 0)$예 ($\varepsilon < \alpha$일 때 음의 기여)극단적 가학적 결론 (Very Sadistic Conclusion) 도출
개인 영향적 관점 (Person-Affecting View)‘현존하거나 실재할 특정 개인’에의 영향만 평가조건부출산의 비대칭성 (Asymmetry) 및 비동일성 문제 (Non-Identity Problem)

4.1 평균 공리주의와 ‘가학적 결론’(The Sadistic Conclusion)

평균 공리주의 $W_{\text{avg}}(X) = \bar{u}$를 채택하면 $A \succ Z$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평균 공리주의는 두 가지 끔찍한 귀결을 낳는다.

  • 지옥에의 추가(Addition to Hell): 모든 사람이 $u = -100$의 극심한 고문을 겪는 지옥 세계에, $u = -90$의 끔찍한 고통을 겪는 사람을 추가로 태어나게 하면 평균 복지가 $-100$에서 $-99.9$로 ‘상승’한다. 평균 공리주의는 생지옥 속에서 고통받을 생명을 추가로 탄생시키는 것이 세계를 개선하는 선행이라고 판정한다!
  • 가학적 결론(The Sadistic Conclusion): 스웨덴 철학자 구스타프 아레니우스(Gustaf Arrhenius)가 정식화한 역설이다. 기존 고복지 사회에 (선택 1) 평균보다는 낮지만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사는 많은 사람들을 추가하는 것과, (선택 2) 끔찍한 고문을 겪는($u < 0$) 극소수의 사람들을 추가하는 것을 비교해보자. 고문당하는 사람의 수가 충분히 적으면 전체 평균을 아주 조금만 깎아먹기 때문에, 평균 공리주의는 행복한 다수를 추가하는 것보다 고문당하는 소수를 추가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선언한다.

4.2 가변 가치론과 임계 수준 공리주의(Critical-Level Utilitarianism)

  1. 토머스 허카(Thomas Hurka)와 황유광(Yew-Kwang Ng)의 가변 가치론: 인구수 $N$이 늘어날수록 한계 가치가 체감하여 $\lim_{N \to \infty} f(N) = M < \infty$으로 수렴한다고 본다($W_{\text{var}} = f(N)\cdot\bar{u}$).
  2. 블랙오비·보서트·도널드슨(Blackorby, Bossert, and Donaldson)의 임계 수준 공리주의(CLU): 중립 수준보다 높은 양의 임계치 $\alpha > 0$(예: $\alpha = 10$)를 도입하여 사회후생함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W_{\text{CL}}(X) = \sum_{i=1}^{N} (u_i - \alpha) = N \cdot (\bar{u} - \alpha) \quad (\alpha > 0)$$ 이 모델에서는 $0 < u_i < \alpha$인 삶이 추가될 때마다 사회후생이 감소하므로 혐오스러운 결론이 차단된다.

그러나 아레니우스는 CLU가 ‘극단적 가학적 결론(The Very Sadistic Conclusion)’을 낳음을 증명했다. $0 < \varepsilon < \alpha$인 세계 $Z$의 인구 $N_Z$가 충분히 크면 $W_{\text{CL}}(Z) = N_Z(\varepsilon - \alpha)$는 거대한 음수가 된다. 그 결과, 전원이 매일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u = -1000$) 소규모 지옥 세계가, 수백조 명이 평온하고 살 만한 삶($u = \varepsilon > 0$)을 누리는 세계 $Z$보다 도덕적으로 더 좋다는 황당한 결론이 도출된다.

4.3 개인 영향적 관점(Person-Affecting View), 비대칭성, 그리고 비동일성 문제

철학자 얀 나베슨(Jan Narveson)은 1967년 유명한 슬로건을 제시했다. “우리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찬성하지, 행복한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We are in favor of making people happy, not of making happy people).” 이것이 개인 영향적 관점(Person-Affecting View)이다.

그러나 이 관점은 두 가지 난관에 부딪힌다.

  1. 제프 맥마한(Jeff McMahan, 1981)의 출산 비대칭성(The Asymmetry): 우리는 고통스러운 삶($u < 0$)을 살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강한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믿으면서도, 행복한 삶($u > 0$)을 살 아이를 반드시 낳아야 할 도덕적 의무는 없다고 믿는다. 이 비대칭성을 일관되게 설명하기란 극히 어렵다.
  2. 파핏의 ‘비동일성 문제’(The Non-Identity Problem): 인류가 ‘자원 고갈 정책(Depletion)’과 ‘자원 보존 정책(Conservation)’ 중 하나를 선택한다고 하자. 고갈 정책을 택하면 300년 뒤의 미래 세대는 심각한 환경 오염 속에서 $u = 20$의 삶을 살고, 보존 정책을 택하면 $u = 100$의 풍요로운 삶을 산다. 파핏은 거시 정책이 바뀌면 사람들의 일상과 결혼·수정 시점이 달라져, 300년 뒤 고갈 정책 하에서 태어나는 100억 명과 보존 정책 하에서 태어나는 100억 명은 유전적·개체적으로 단 한 명도 겹치지 않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text{Pop}_{\text{deplete}} \cap \text{Pop}_{\text{conserve}} = \emptyset$)임을 지적했다. 만약 고갈 정책을 택하지 않았다면 고갈 세계의 사람들은 아예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며, 그들에게도 $u = 20 > 0$의 삶은 태어나지 않는 것보다 나쁘지 않다! 따라서 좁은 의미의 개인 영향적 관점만으로는 고갈 정책이 300년 뒤의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결론에 빠져 환경 파괴를 비판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비인격적(Impersonal) 총량 원칙을 다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다시 혐오스러운 결론으로 이어진다.

제5장 아레니우스의 불가능성 정리와 현대 장기주의(Longtermism)의 전환

5.1 아레니우스의 인구 윤리학 불가능성 정리

스웨덴 철학자 구스타프 아레니우스(Gustaf Arrhenius)는 케네스 애로(Kenneth Arrow)의 사회선택이론을 확장하여, 다음 네 가지 기본 도덕 직관을 동시에 만족하는 이행적(Transitive) 인구 가치 순위 $\succeq$는 수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증명했다.

  1. 평등 우위 원칙(Egalitarian Dominance): 인구수가 같을 때 총 복지가 더 크고 더 평등한 세계가 우월하다.
  2. 질적 조건 / 혐오스러운 결론 회피(Quality): 고복지 세계 $A$는 한계 생존 세계 $Z$보다 우월하다.
  3. 양적 조건 / 단순 추가(Quantity): 긍정적 복지를 누리는 사람들의 추가는 세계를 악화시키지 않는다.
  4. 비가학성 원칙(Non-Sadism): 고통받는 인구($u < 0$)를 추가하는 것이 행복한 인구($u > 0$)를 추가하는 것보다 우월할 수는 없다.

5.2 2021년 『정치철학 저널』 공동 선언과 장기주의(Longtermism)

2021년 피터 싱어(Peter Singer), 힐러리 그리브스(Hilary Greaves), 토비 오드(Toby Ord), 윌리엄 맥어스킬(William MacAskill), 황유광 등 29명의 세계적 석학들은 『정치철학 저널』(Journal of Political Philosophy)에 「혐오스러운 결론을 넘어서」(Overcoming the Repugnant Conclusion)라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은 ‘혐오스러운 결론’을 피하려는 집착이 오히려 가학적 결론이나 비이행성 같은 훨씬 심각한 오류를 낳았다고 지적하며, 인간이 세계 $Z$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1) 200조($2 \times 10^{14}$)라는 천문학적 수의 크기를 직관적으로 체감하지 못하는 범위 둔감성(Scope Insensitivity)과, (2) $u = \varepsilon > 0$인 삶을 은연중에 고통스러운 지옥($u < 0$)으로 잘못 상상하는 오류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오늘날 장기주의(Longtermism)와 실존적 위험 연구는 인류 멸종을 막고 지속 가능한 기술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미래 세대가 거대한 인구 규모(큰 $N$)와 지극히 높은 삶의 질(높은 $\bar{u}$)을 동시에 달성하도록 이끄는 실천적 윤리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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