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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사과를 보면 '까마귀는 검다'는 것의 증명이 될까?: 헴펠의 까마귀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을 까마귀를 전혀 보지 않고도 증명할 수 있을까? 논리적 동치성이 만들어내는 귀납법의 역설.

과학자는 어떻게 이론을 증명할까요? 보통은 세계를 관찰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귀납법(induction)‘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을 증명하고 싶다면, 전 세계의 까마귀를 관찰하여 그것이 검은지 하나하나 확인해 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1940년대, 논리학자 칼 헴펠(Carl Hempel)은 이 당연한 과학적 방법론에 숨겨진 기묘한 논리적 허점을 지적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파란 사과나 빨간 구두를 보는 것만으로 ‘까마귀는 검다’는 증거가 된다”**는 헴펠의 까마귀(Hempel’s Ravens) 역설입니다.

논리의 뒤바뀜: 대우의 마법

헴펠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수학에서 배우는 **‘대우(contraposition)’**라는 개념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논리학에서 어떤 명제 “A이면 B이다"가 참이면, 그 대우인 “B가 아니면 A가 아니다"도 반드시 참이 됩니다(이를 논리적 동치라고 부릅니다).

가설 $H_1$: “모든 까마귀는 검다 (까마귀라면, 검다)”

이 가설 $H_1$의 대우를 취해 봅시다. “검지 않다면, 까마귀가 아니다"가 됩니다.

가설 $H_2$: “모든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

논리학의 규칙에 따르면, $H_1$과 $H_2$는 **완전히 같은 의미(동치)**입니다. 한쪽이 증명되면, 자동으로 다른 한쪽도 증명된 것이 됩니다.

까마귀를 보지 않고 까마귀를 증명하기

이제 가설 $H_1$(까마귀는 검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검은 까마귀를 한 마리 발견할 때마다 가설의 확실성(증거)이 조금씩 강해집니다. 이것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H_1$과 $H_2$는 같은 의미이므로, 가설 $H_2$(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의 증거를 찾는 것은, 그대로 가설 $H_1$의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H_2$의 증거란 무엇일까요? “검지 않고, 까마귀도 아닌 것"을 찾으면 됩니다.

  • 테이블 위에 **“파란 사과”**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것은 검지 않고, 까마귀도 아닙니다. 따라서 $H_2$를 뒷받침하는 증거입니다.
  • 옷장 안에 **“빨간 구두”**가 있었습니다. 이것도 검지 않고, 까마귀도 아닙니다. $H_2$의 증거입니다.
  •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습니다. 이것 역시 $H_2$의 증거입니다.

$H_2$의 증거는 $H_1$의 증거와 같은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기묘한 결론이 도출됩니다.

“방 안에서 파란 사과나 빨간 구두를 관찰하면 할수록,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의 올바름이 증명되어 간다”

graph TD A["명제 H1: 모든 까마귀는 검다"] <-->|논리적 동치 (대우)| B["명제 H2: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 C["관찰: 검은 까마귀"] -->|증거가 된다| A D["관찰: 파란 사과"] -->|증거가 된다| B D -.->|따라서 이것도 증거가 되어야 한다?| A style A fill:#4CAF50,stroke:#333,stroke-width:2px,color:#fff style B fill:#4CAF50,stroke:#333,stroke-width:2px,color:#fff style C fill:#2196F3,stroke:#333,color:#fff style D fill:#FF9800,stroke:#333,color:#fff

왜 직관에 반하는가?

파란 사과를 보고 “까마귀는 검다"고 확신을 깊게 하는 조류학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논리학적으로는 완벽하게 옳아야 하는데, 왜 우리의 상식은 이를 거부하는 것일까요?

철학이나 통계학의 세계에서는 이 역설에 대해 몇 가지 접근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1. 베이즈주의적 해결법 (정보량의 차이)

현대 통계학(베이즈 확률) 관점에서의 가장 유력한 반론은, ‘증거의 강도(정보량)‘의 차이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세계에는 ‘검은 것’보다 ‘검지 않은 것’이 압도적으로 많고, 또한 ‘까마귀’보다 ‘까마귀가 아닌 것’이 천문학적으로 많이 존재합니다.

파란 사과를 보았을 때, 그것은 확실히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것의 증거는 되지만, 그 증거로서의 가치(확률의 상승폭)가 한없이 0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광활한 우주 속에 있는 무수히 많은 ‘검지 않은 것’ 중 하나를 확인했다고 해서, “까마귀가 검다"는 확률이 올라가는 양은 사막에서 모래알 하나를 치우는 정도의 영향밖에 없습니다. 반면, 검은 까마귀를 직접 한 마리 발견하는 것은 압도적으로 큰 증거로서의 가치를 지닙니다.

즉, 논리적으로는 “파란 사과는 증거가 된다"지만, 실용적으로는 “증거로서의 가치가 0에 가깝기 때문에 무시해도 좋다"는 것이 베이즈적 해결입니다.

2. ‘실내 조류학’의 한계

이 역설은 ‘귀납법(관찰에서 일반 법칙을 도출하는 것)‘이라는 과학의 근간이 얼마나 취약한 전제 위에 성립되어 있는지를 부각시킵니다. 논리적 동치성에만 의존하게 되면,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 안의 잡동사니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우주의 모든 법칙(“모든 백조는 희다”, “모든 외계인은 초록색이 아니다” 등)을 검증할 수 있게 된다는 ‘실내 조류학’이 가능해지고 맙니다.

헴펠의 까마귀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증거’나 ‘증명’이라는 단어가, 순수한 기호 논리학의 규칙만으로는 제대로 포착해낼 수 없음을 보여주는 아주 흥미로운 역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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