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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위대한 수학자들: 피타고라스, 아르키메데스부터 유클리드까지

역사에 이름을 남긴 고대 그리스나 이집트의 위대한 수학자들을 출생 순으로 자세히 소개합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 아르키메데스의 원리, 유클리드의 원론 등 그들의 놀라운 발견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기구한 일화를 알기 쉽게 해설하고 있습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수학자들을 태어난 순서대로 소개합니다.

피타고라스 (Pythagoras, 기원전 582년경-기원전 496년경)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만물은 수이다"라는 사상을 내세우며, 크로톤에 피타고라스 교단을 창설했다. 직각삼각형의 변의 길이 관계를 나타내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유명하지만, 제자인 히파소스가 무리수를 발견했을 때 그것이 교단의 근간을 뒤흔드는 교리에 반한다는 이유로 그를 바다에 밀어 떨어뜨려 입막음을 했다는 무서운 전설도 남아있다. 음악과 수학의 연관성에도 주목하여 음계의 기초를 다진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르키메데스 (Archimedes, 기원전 287년경-기원전 212년)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발명가. 실진법(착출법)을 사용하여 원주율의 근사치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구의 부피와 겉넓이의 공식을 발견했다. 미적분의 맹아라고 할 수 있는 기법을 사용하여 고대 최고의 수학자로 평가받는다.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발견했을 때 너무 흥분한 나머지 “유레카(알아냈다)!“라고 외치며 벌거벗은 채로 거리를 뛰어다녔다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시라쿠사 방어전에서는 수많은 신무기를 고안하여 로마군을 괴롭혔으나, 땅에 그린 도형에 열중하던 중 병사에게 살해당했다.

유클리드 (Euclid, 기원전 3세기경)

고대 이집트의 그리스계 수학자로,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서 『원론』(에우클레이데스 원론)에서 소수의 공리와 공준에서 출발해 정리를 논리적으로 이끌어내는 ‘공리적 체계’를 확립하여, 이후의 수학과 과학 발전에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왕이 “기하학을 배우는 지름길은 없는가"라고 묻자,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가 구축한 유클리드 기하학은 19세기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탄생할 때까지 절대적인 진리로 군림했다.

디오판토스 (Diophantus, 207년경-291년경)

그리스의 수학자로 ‘대수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기호법의 도입과 방정식의 유리수 해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그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그의 묘비명에는 그의 수명을 구하는 대수 방정식의 문장제가 새겨져 있다는 전설이 있다. 저서 『산술』이 대표작이며, 방정식의 정수해나 유리수해를 구하는 분야를 현재도 ‘디오판토스 방정식’이라고 부른다. 훗날 페르마가 이 책을 읽고 여백에 유명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남기면서 역사적인 각광을 받았다.

피보나치 (L. Fibonacci, 1175년경-1250년경)

중세 이탈리아의 수학자. 본명은 레오나르도 다 피사. 주저 『산반서』를 저술하여, 당시 유럽에서 일반적이었던 로마 숫자 대신 계산에 편리한 인도-아라비아 숫자와 위치 기수법을 도입하고 보급하는 데 힘썼다. 토끼 암수 한 쌍이 번식하는 모델의 문제에서 도출된 ‘피보나치 수열’(1, 1, 2, 3, 5, 8…)의 발견자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남겼다. 이 수열은 해바라기 씨앗의 배열이나 앵무조개의 껍데기 등 자연계 곳곳에 나타나는 황금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셰 (C. G. Bachet, 1581-1638)

17세기 프랑스의 귀족이자, 취미로 숫자 퍼즐과 수학 연구를 한 아마추어 수학자. 디오판토스의 『산술』 그리스어 원전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출간하고, 여기에 자신의 연구를 주석으로 실은 것으로 큰 공적을 남겼다. 이 바셰판 『산술』을 읽은 페르마가 그 여백에 수많은 메모를 남긴 것이 훗날 수학계를 크게 움직이게 되었다. 또한 강 건너기 문제나 숫자 맞추기 마술 등, 레크리에이션 수학의 고전적인 문제집을 출판하여 유희 수학의 선구자로도 평가받는다.

메르센 (M. Mersenne, 1588-1648)

프랑스의 미님회 수사, 신부. ‘메르센 수’에 그 이름을 남기고 있으나, 사실 이 수는 친구 페르마가 고안해 냈다고도 한다. 그는 자신의 수도원을 거점으로 데카르트, 페르마, 파스칼, 갈릴레오 등 당시 유럽 전역의 초일류 학자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그들의 연구를 중계하는 ‘걸어 다니는 과학 아카데미’로서 학문 발전에 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음향학 분야에서도 업적이 있으며, 현의 진동수에 관한 ‘메르센의 법칙’을 발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데카르트 (R. Descartes, 1596-1650)

17세기 프랑스의 독창적인 철학자, 수학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방법서설』, 『기하학』 등이 있다. 수학에서의 가장 큰 공적은 평면상에 X축과 Y축을 직교시키는 ‘직교 좌표계(데카르트 좌표계)‘를 고안한 것이다. 이로 인해 도형을 대수 방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기하학과 대수학을 통합한 ‘해석기하학’을 창시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기어 다니는 파리를 보고 좌표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남아 있다.

페르마 (P. de Fermat, 1601-1665)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본업은 툴루즈 법원의 판사였으며, 수학은 어디까지나 취미로 여가 시간에 하던 ‘아마추어 수학의 제왕’이다. 해석기하학, 확률론, 미적분법의 기초를 다졌다. 또한 정수론의 시조이기도 하며, 디오판토스의 『산술』 여백에 “이 정리에 관해 나는 참으로 놀라운 증명을 발견했지만, 이 여백은 그것을 쓰기에는 너무 좁다"라고 남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이후 360년 이상에 걸쳐 전 세계의 천재 수학자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로베르발 (G. P. de Roberval, 1602-1675)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당시로서는 드물게 콜레주 루아얄에서 수학 교수직을 얻은 전문가이다. 사이클로이드(바퀴 위의 점이 그리는 궤적)의 면적을 계산하는 연구 등으로 알려져 있다. 불가분량의 추론을 이용하여 미적분학의 선구적인 업적을 올렸다. 자신의 교수직을 유지하기 위해(교수직은 수학 경연 대회의 승자에게 주어졌기 때문) 발견한 정리나 기법을 비밀로 하여 논문을 즉시 발표하지 않고, 다른 수학자들과 종종 우선권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는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월리스 (J. Wallis, 1616-1703)

17세기 영국의 수학자이며,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 주저 『무한의 산술』에서 극한의 개념에 수학적인 형식을 부여하여 뉴턴 등으로 이어지는 미적분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크게 공헌했다.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무한대 기호 ‘∞‘를 고안하고 처음으로 수학 서적에 사용한 인물이다. 또한 암호 해독의 천재이기도 하여, 청교도 혁명 당시 의회파를 위해 왕당파의 암호 문서를 차례로 해독하여 이름을 떨쳤다. 왕립학회(영국 학술원)의 창설 멤버 중 한 명으로도 활약했다.

브롱커 (W. Brouncker, 1620-1684)

아일랜드의 귀족(제2대 브롱커 자작)이며, 영국의 왕립학회(영국 학술원)의 초대 회장을 지냈다. 수학을 깊이 애호하여 월리스 등 동시대의 학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원주율을 표현하기 위한 아름다운 ‘연분수’의 공식을 발견하여 수학사에 이름을 남겼다. 또한 페르마가 영국 수학자들에게 도전장으로 보낸 펠 방정식의 문제에 대해 월리스와 협력하여 독자적인 해법을 도출해 내는 등, 17세기 수학 발전에서 지도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한 지식인이다.

파스칼 (B. Pascal, 1623-1662)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종교 사상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성을 발휘하여 10대에 ‘파스칼의 정리’를 발견했고, 아버지의 세금 계산을 돕기 위해 세계 최초의 기계식 계산기 ‘파스칼린’을 발명했다. 페르마와의 서신 교환을 통해 현재의 확률론의 기초를 다진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훗날 ‘파스칼의 체험’이라고 불리는 신비 체험을 거쳐 얀센주의에 귀의했으며, 말년에는 수학에서 떠나 종교 활동과 사색에 전념했다. 『팡세』는 그때의 유고집이다.

아이작 뉴턴 (I. Newton, 1642-1727)

영국의 물리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페스트의 유행으로 대학이 휴교하여 고향으로 피난을 갔던 ‘기적의 해’에 만유인력의 법칙, 미적분법, 광학의 기초라는 3대 업적의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라이프니츠와는 독립적으로 미분적분학을 창시했으나, 나중에 그 우선권을 둘러싸고 격렬한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주저 『프린키피아』는 고전 역학의 기초를 다졌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인력을 떠올렸다는 일화는 그 자신이 말년에 한 이야기라고 한다.

세키 타카카즈 (T. Seki, 1642년경-1708년)

에도 시대 전기의 일본 수학자. ‘와산’을 고도의 수학 체계로 끌어올린 제1인자이며 ‘산성’이라고 일컬어진다. 서양의 라이프니츠보다 먼저 연립방정식을 풀기 위한 행렬식에 해당하는 개념을 발견하고 베르누이 수를 독자적으로 찾아내는 등, 쇄국 치하의 일본에서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을 전개했다. 원주율을 11자리까지 정확하게 계산하는 등 미적분의 전 단계인 ‘원리’의 기초도 다졌다. 그가 구축한 세키류는 와산의 주류파가 되어 일본 독자적인 고도 수학 문화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G. W. Leibniz, 1646-1716)

17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철학자, 수학자. 외교관이자 도서관장으로도 활약한 ‘만능 천재’이다. 뉴턴과는 독립적으로 미분적분학을 창시했으며,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미적분 기호(dy/dx, ∫ 등)를 고안했다. 그의 기호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워 후의 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진법의 연구나 논리학의 형식화에도 공헌하여 컴퓨터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다. 또한 “이 세계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것이다"라는 낙관주의 철학을 제창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오일러 (L. Euler, 1707-1783)

18세기 스위스가 낳은 역사상 최대의 ‘수학의 왕’. 생애 후반에는 양쪽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이적인 기억력과 암산력으로 연구를 계속하여 논문 700편 이상, 저서 45편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겼다. ‘오일러의 공식(e^iπ + 1 = 0)‘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식으로 찬사를 받는다. 함수 기호 f(x)나 자연로그의 밑 e, 원주율 π 등의 기호를 표준화하고, 해석학, 정수론, 기하학 등 모든 분야의 기초를 다졌다. “그는 숨을 쉬듯이 계산했다"라고 평가받을 정도의 천재 중의 천재이다.

라그랑주 (J. L. Lagrange, 1736-1813)

18세기 이탈리아 태생의 프랑스 수학자, 천문학자. 나폴레옹으로부터 “수학의 높이 솟은 피라미드"라는 찬사를 받았다. 오일러의 추천으로 베를린 학술원 수학부장을 지냈다. 그의 가장 큰 공적은 기하학적인 직관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대수적인 계산만으로 역학을 재구축한 『해석 역학』의 저술이다. 또한 정수론이나 변분법, 방정식의 해의 공식에 관한 연구(훗날 갈루아 이론의 선구) 등에서도 지대한 업적을 올렸다. 미터법 제정에도 위원으로 관여하여 현대 사회의 기반 조성에도 공헌했다.

르장드르 (A. M. Legendre, 1752-1833)

프랑스의 수학자. 정수론, 타원적분, 인력 문제 등에서 다수의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최소제곱법의 발견에 대해서는 가우스와 격렬한 우선권 다툼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수론’이라는 말은 그의 주저 『정수론(Théorie des Nombres)』에서 유래했으며, 소수 정리의 추측이나 평방잉여의 상호 법칙의 엄밀한 증명에 대한 공헌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업적의 상당수는 나중에 가우스나 아벨 등에 의해 더 일반적인 형태로 완성되는 불운을 겪었다.

가우스 (C. F. Gauss, 1777-1855)

독일이 낳은 ‘수학의 왕’이라 불리는 천재. 정수론, 비유클리드 기하학, 측지학, 천문학 등 극히 다방면에 걸친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 극단적인 완벽주의자로, “적지만 익은 것을(Pauca sed matura)“이라는 모토 하에 발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지 않으면 성과를 결코 공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후의 유고에서 경이적인 발견이 속속 발견되었다. 주저 『산술 연구』는 근대 정수론의 금자탑이며, 어린 시절 1부터 100까지의 합을 순식간에 계산한 일화도 널리 알려져 있다.

코시 (A. L. Cauchy, 1789-1857)

프랑스의 수학자. 오일러에 버금간다고도 할 정도의 다작 연구자이며, 복소함수론의 창시나 미분적분학의 엄밀화 등 해석학에 결정적인 기초를 다졌다. 열렬한 왕당파이자 엄격한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격동기에는 종종 망명이나 사임을 면치 못하는 등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냈다. 다른 사람의 논문 심사를 방치해 버리는 나쁜 버릇이 있어서 아벨이나 갈루아의 지극히 중요한 논문을 분실해 버렸다는, 수학사에 남는 안타까운 일화로도 이름을 남기고 있다.

라메 (G. Lamé, 1795-1870)

프랑스의 수학자 겸 물리학자. 곡선 좌표계의 이론을 구축하고 탄성역학이나 열전도론 같은 응용수학 및 수리물리학 분야에서 큰 공헌을 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증명에도 도전하여 n=7인 경우의 증명에 성공한 한 사람이지만, 복소정수에서의 유일 인수 분해 정리의 함정에 빠진 에피소드로도 유명하다. 그의 이름은 ‘라메 곡선’이나 탄성역학에서의 ‘라메의 상수’ 등에 남아 있으며, 에펠탑에 이름이 새겨진 72명의 프랑스 과학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아벨 (N. H. Abel, 1802-1829)

노르웨이의 수학자. 극도의 빈곤과 싸우면서, 일반 5차 방정식의 대수적 해법의 불가능성을 증명한다는 수학사상의 대업적을 불과 21세에 이룩했다. 타원함수론이나 아벨적분론 등에서도 야코비에 버금가는 천재적인 번뜩임을 보였지만, 그 논문은 코시에게 방치되는 등 생전에는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다. 대학 교수직에 오르기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불과 며칠 전에 결핵으로 인해 2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천재로 알려져 있다.

야코비 (C. G. J. Jacobi, 1804-1851)

유대계 독일의 수학자. 타원함수론, 세타함수론, 편미분방정식, 행렬식론 등에서 압도적인 계산력과 통찰력을 발휘하여 ‘야코비안’에 그 이름을 남긴다. 동시대의 아벨과는 좋은 라이벌 관계였으며, 그가 요절한 후에는 그의 업적을 세상에 소개하는 데에도 진력했다. 푸리에의 “과학은 자연의 탐구나 공공의 이익에 공헌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대해, “과학의 유일한 목적은 인간 정신의 명예이다"라고 반박하며 순수 수학의 지고함을 강력히 옹호한 에피소드는 대단히 유명하다.

리우빌 (J. Liouville, 1809-1882)

프랑스의 수학자. 복소해석학에서의 ‘리우빌의 정리’나 미분방정식론에서의 ‘스투름-리우빌 경계값 문제’ 등 해석학의 많은 기초 개념에 이름을 남긴다. 초월수의 존재를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증명한 ‘리우빌 수’의 발견으로도 알려져 있다. 교육자나 학술 잡지의 편집자로서도 매우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여, 생전에는 전혀 평가받지 못했던 갈루아의 난해한 유고를 해독하여 세상에 내놓았고, 그의 군론이 수학계에서 인정받게 된 최대의 공로자가 되었다.

쿠머 (E. E. Kummer, 1810-1893)

독일의 수학자. 대수적 정수론에서 ‘이상수(이데알의 선구)‘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원분체의 정수론을 깊이 연구했다. 이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응용하여, ‘정규 소수’라고 불리는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소수에 대해 정리가 성립함을 증명한다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성과를 올렸다. 김나지움(중등학교)의 교사를 10년간 맡았던 시기가 있었으며, 크로네커나 바이어슈트라스 같은 후의 대수학자들의 재능을 발굴하고 키워낸 훌륭한 교육자이기도 했다.

갈루아 (É. Galois, 1811-1832)

프랑스의 수학자. 방정식이 대수적으로 풀리기 위한 조건을 ‘군’이라는 전혀 새로운 개념을 사용하여 해명하고, 현대 대수학의 문을 억지로 연 불세출의 천재. 그러나 그 이론은 너무 조숙하고 난해했기 때문에 생전에는 아카데미로부터 계속 묵살당했다. 열광적인 공화파로서 정치 운동에 빠져들어 투옥되는 등 파란만장하고 짧은 생애를 보냈다. 불과 20세에 연애 문제에서 비롯된 결투로 목숨을 잃었지만, 전날 밤 절친에게 남긴 수학적 유서는 후세 수학에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카를 바이어슈트라스 (K. Weierstrass, 1815-1897)

독일의 수학자. 도형적인 직관에 의존하던 당시의 미적분학에 대해 엄밀한 ‘ε-δ 논법’을 정착시켜 해석학의 기초를 견고하게 다지며 ‘현대 해석학의 아버지’로 찬사를 받는다. ‘모든 점에서 연속이지만 모든 점에서 미분 불가능한 함수’를 제시하여 당시 수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오랫동안 김나지움의 교사로서 체조나 서예까지 가르치는 나날을 보냈으나, 훗날 대학 교수가 되어 소피아 코발레프스카야 등 많은 우수한 제자들을 길러낸 온화한 인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크로네커 (L. Kronecker, 1823-1891)

유대계 독일의 수학자. ‘크로네커의 델타’에 이름을 남겼으며, 대수적 정수론이나 타원함수론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신은 정수를 창조하셨다. 그 외에는 모두 인간의 작품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듯이, 수학은 유한 번의 조작으로 구성할 수 있는 것만 다루어야 한다는 엄격한 구성주의 입장을 취했다. 그 극단적인 신념과 주관성이 강한 성격 때문에 칸토어의 집합론을 ‘수학의 질병’이라고 격렬하게 공격하여 그의 정신을 궁지로 몰아넣거나, 동료 바이어슈트라스 등을 비판하는 등 수학사에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우고 있다.

리만 (B. Riemann, 1826-1866)

독일의 수학자. 가우스의 애제자이며, 복소해석에서의 ‘리만 면’, 적분의 기초를 정의한 ‘리만 적분’,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의 수학적 틀이 된 ‘리만 기하학’ 등, 현대 수학·물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획기적인 개념들을 차례로 창출했다. 1859년에 발표한 유일한 정수론 논문에서 제기된 ‘리만 가설’은 소수의 분포에 관한 수학사상 최대의 미해결 문제로서 현재도 많은 천재들을 가로막고 있다.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에 병약하여 39세에 결핵으로 요절했다.

게오르크 칸토어 (G. Cantor, 1845-1918)

독일의 수학자. 현대 수학의 언어라고도 할 수 있는 ‘집합론’을 독력으로 창시하고, 대각선 논법을 사용하여 무한의 크기에 다른 ‘농도’의 계층이 존재한다는 경이적인 사실을 증명했다. 그러나 인간의 직관에 반하는 그 심오한 이론은 크로네커나 푸앵카레 등 당시의 권위자들로부터 ‘수학을 파괴하는 이단’이라며 격렬한 공격과 조롱을 받았다. 연속체 가설의 증명에 막힌 것과 주위의 박해로 인해 심각한 우울증을 앓아 불우하게 정신병원에서 생애를 마감했지만, 현재는 수학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아로 평가받고 있다.

푸앵카레 (H. Poincaré, 1854-1912)

‘최후의 만능 과학자’로 불리는 프랑스의 천재. 보형함수론의 창시, 토폴로지(위상기하학)의 기초 확립, 미분방정식의 정성적 이론 등 수학의 모든 분야에서 거대한 업적을 남겼다. 천체 역학의 삼체 문제 연구에서 ‘카오스 이론’의 단서를 열었고, 물리학에서도 특수 상대성 이론에 육박하는 등 그 직관은 남달랐다. 극심한 근시라 잘 잊어버렸고 머릿속에서 사고를 완전히 다듬은 후 단숨에 써 내려가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푸앵카레 추측’은 약 100년 후에 페렐만에 의해 마침내 해결되었다.

헨젤 (K. Hensel, 1861-1941)

독일의 수학자이며 크로네커의 제자. 대수함수론의 아이디어를 정수론으로 가져옴으로써, 유리수체 위에 전혀 새로운 완비화인 ‘p진수’라는 개념을 발견·도입했다. 이 p진수 이론은 현대의 수론기하학이나 대수적 정수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극히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나 할아버지는 작곡가 파니 멘델스존(펠릭스 멘델스존의 누나), 아버지는 화가라는 예술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힐베르트 (D. Hilbert, 1862-1943)

독일의 수학자. 불변식론의 유한성 정리, 대수적 정수론의 집대성 『수론 보고』, 기하학의 공리화 등 19세기에서 20세기로의 전환기에 수학의 모든 분야를 이끌었던 거인. 1900년 파리 국제 수학자 회의에서 제창한 ‘힐베르트의 23가지 문제’는 20세기 수학이 나아갈 이정표가 되었다. 수학의 무모순성을 증명하려 했던 ‘힐베르트 프로그램’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좌절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태어난 수학 기초론의 틀은 현대 논리학의 기반이 되었다.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라는 그의 묘비명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다카기 데이지 (T. Takagi, 1875-1960)

일본의 수학자. 독일에 유학하여 힐베르트를 사사한 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학술적 고립 속에서 독자적인 연구를 심화시켜, 아벨 확대의 전모를 밝히는 ‘유체론’이라는 장대한 이론을 완성했다. 이 업적으로 인해 후진국이었던 일본의 수학을 돌연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936년에는 제1회 필즈상 심사위원이라는 영예로운 역할도 맡았다. 그가 저술한 『해석개론』이나 『초등정수론 강의』 등의 교과서는 명저로서 현재까지도 많은 일본의 수학도들에게 읽히고 있다.

에미 뇌터 (A. E. Noether, 1882-1935)

독일의 수학자. 환론이나 이데알론을 공리화하여 현대의 ‘추상대수학’이라는 분야를 실질적으로 혼자서 창조해 낸 최대의 공로자. 물리학에서도 연속적인 대칭성이 보존 법칙에 대응함을 보여주는 ‘뇌터의 정리’를 증명하여 현대 물리학에 필수적인 기초를 제공했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강했던 당시 오랫동안 무급 강사로 푸대접을 받았지만, 그녀의 주위에는 항상 우수한 학생들(뇌터의 소년들)이 모였다. 유대계였기 때문에 나치 정권하에서 대학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망명한 후 53세에 급사한 불굴의 천재.

스리니바사 라마누잔 (S. Ramanujan, 1887-1920)

인도의 수학자. 정규 수학 교육을 거의 받지 않고 독학으로 수학을 연구하여, 직관과 번뜩임에 의해 원주율이나 분할수에 관한 수많은 경이적인 공식을 발견했다. ‘인도의 마술사’라 불리며 G. H. 하디와의 공동 연구로 이름을 떨쳤다. 그가 발견한 공식의 상당수는 증명이 붙어 있지 않았고 “꿈속에서 여신이 가르쳐 주었다"라고 말하는 등 신비적인 일화가 끊이지 않는다. 영국으로 건너가 하디의 밑에서 재능을 꽃피우지만, 영국의 혹독한 기후와 생활 습관의 차이로 건강을 해쳐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병사했다. 그가 남긴 ‘라마누잔 노트’는 사후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수학자들에게 영감을 계속 주고 있다.

모델 (L. J. Mordell, 1888-1972)

미국 태생의 영국 수학자. 부모는 리투아니아 출신의 이민자. 부정방정식론에서 수많은 논문이 있으나, 타원곡선론에서의 모델의 정리(유리점군이 유한 생성이라는 것)는 특히 유명하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학금 시험을 치르기 위해 홀로 영국으로 건너갔고, 이후 영국을 거점으로 활동했다. 1922년에 그가 증명한 정리를 나중에 앙드레 베유가 일반 대수 다양체(또는 아벨 다양체)의 경우로 확장하여 ‘모델-베유의 정리’로 만듦으로써, 산술적 대수 기하학은 이로부터 폭발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또한 그가 제창한 ‘모델 추측’은 후일 팔팅스에 의해 증명되었다.

지겔 (C. L. Siegel, 1896-1981)

독일의 정수론학자. 해석적 정수론 및 천체 역학 등의 분야에서 수많은 획기적인 공헌을 했다. 특히 이차 형식의 해석적 이론, 디오판토스 방정식의 정수해의 유한성에 관한 ‘지겔의 정리’나, 초월수론에서의 ‘지겔의 보조정리’로 그 이름을 떨쳤다. 그는 매우 엄격하고 높은 기준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추상화가 진행되는 20세기 수학계에서 부르바키로 대표되는 추상 수학의 조류를 강력히 비판하고 구체적인 고전적 해석의 기법을 중시했다. 그 고고한 자태는 많은 존경을 받아 20세기를 대표하는 대수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하세 (H. Hasse, 1898-1979)

독일의 수학자. 쿠르트 헨젤의 제자로서 p진수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켜, p진 해석의 기초 확립과 그 수론에의 응용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국소-대역 원리(하세의 원리)‘를 확립하고, 유체론의 정비나 타원곡선의 L함수 연구 등에서도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다카기 데이지의 유체론을 유럽에 소개하고 에밀 아르틴과 함께 그 보급과 발전에 진력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하세 다이어그램’이나 ‘하세-베유의 L함수’ 등에 그 이름을 붙였으며, 20세기 전반의 대수적 정수론을 견인한 중심인물이다.

오카 기요시 (K. Oka, 1901-1978)

일본의 수학자. 다변수 복소함수론에서 당시 전 세계의 수학자 중 누구도 풀지 못했던 ‘3대 문제(레비의 문제 등)‘를 오랜 세월의 고고한 연구 끝에 단 혼자서 모두 해결하는 경이적인 위업을 이룩했다. 그 업적의 너무나도 선구성과 난해함 때문에, 발표 초기에는 세계 수학계로부터 정당하게 이해받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또한 독자적인 ‘정서’를 중시하는 수학관과 교육 사상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봄날 저녁 수학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수필 『춘소십화』 등은 일반 독자들에게도 널리 애독되고 있다. 맑은 날에도 고무장화를 신고 걷는 등의 기행도 이야깃거리로 남아 있다.

존 폰 노이만 (J. von Neumann, 1903-1957)

헝가리 출신의 미국 수학자. 순수 수학과 응용 수학의 경계를 넘어 양자 역학의 엄밀한 수학적 기초 확립, 게임 이론의 창시, 셀 오토마타의 연구 등 지극히 다방면에 걸친 분야에서 결정적인 업적을 남겼다. 또한 현대 컴퓨터의 기본 구성인 ‘프로그램 내장 방식(노이만형 컴퓨터)‘을 고안하여 정보 과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어린 시절부터 어학과 암산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했으며, 그 너무나도 압도적인 계산력과 기억력, 논리적 사고력 때문에 ‘악마의 두뇌’, ‘화성인’이라고 불렸다. 맨해튼 계획 등 군사 연구에도 깊이 관여했다.

베유 (A. Weil, 1906-1998)

유대계 프랑스 수학자. 20세기 수학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수학자 집단 ‘부르바키’의 사실상 리더이자 창설 멤버 중 한 명. 대수 기하학의 엄밀한 기초를 다지고, 그것을 사용하여 유한체상의 대수 곡선에 관한 리만 가설을 증명했다. 그가 1949년에 제창한 ‘베유 추측’은 그 후 수십 년에 걸친 대수 기하학의 폭발적인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다양한 언어나 철학(특히 인도 철학)에도 깊은 조예를 가졌고, 수학사의 저술도 남겼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병역 거부로 투옥되는 등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냈다.

쿠르트 괴델 (K. Gödel, 1906-1978)

오스트리아 출신의 논리학자, 수학자. 1931년에 발표한 ‘불완전성 정리’는 충분한 표현력을 갖춘 모순 없는 형식적 공리계에는 반드시 증명도 반증도 할 수 없는 명제가 존재함을 보여주어 힐베르트의 프로그램에 종지부를 찍는 동시에 수학, 철학계에 근본적인 충격을 주었다. 또한 ‘연속체 가설’의 상대적 무모순성을 증명하는 등 집합론에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아인슈타인과 친교가 깊어,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는 함께 산책하며 토론을 나누는 모습이 유명했다. 말년에는 강박 신경증과 편집증에 시달려 독살을 두려워하다 아사했다.

앨런 튜링 (A. Turing, 1912-1954)

영국의 수학자, 논리학자, 암호 연구자. 계산의 개념을 수학적으로 형식화한 가상 기계 ‘튜링 머신’을 고안하여 현대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AI)의 아버지로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블레츨리 파크에서 독일군의 암호 ‘에니그마’ 해독에 다대한 공헌을 하여 연합국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후에는 컴퓨터의 개발이나 형태 형성의 수리 생물학적 모델링(튜링 패턴) 등에도 임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의 법률에 의해 동성애 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그 후 41세에 청산가리를 넣은 사과를 베어 물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고다이라 구니히코 (K. Kodaira, 1915-1997)

일본의 수학자. 헤르만 바일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도미,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등에서 활약했다. 1954년에 일본인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했다. 조화 적분론을 대수 기하학이나 복소 다양체론에 응용하여, ‘고다이라 소멸 정리’나 ‘고다이라 매장 정리’, 나아가 복소 해석 곡면의 분류 등 수많은 획기적인 성과를 가져오며 20세기 기하학의 발전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귀국 후에는 도쿄 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아 후진 양성이나 수학 교육에도 힘썼다. 노트 귀퉁이가 새까매질 때까지 계산을 반복하는 등, 우직할 정도로 투박한 노력을 중시한 일화도 남아 있다.

이토 기요시 (K. Ito, 1915-2008)

일본의 수학자. 확률론에서 ‘확률 적분’ 및 ‘확률 미분방정식(이토의 공식, 이토의 보조정리)‘이라 불리는 전혀 새로운 분야를 창시했다. 무작위적인 움직임을 기술하는 그의 이론은 훗날 월스트리트의 금융 공학(블랙-숄즈 방정식 등)의 근간을 이루는 수학적 기초가 되어, 경제학뿐만 아니라 물리학이나 생물학 등 폭넓은 분야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다대한 응용에의 공헌이 평가되어 2006년 국제 수학자 회의에서 제1회 가우스상을 수상했다. 순수한 수학적 탐구에서 태어난 이론이 현실 세계에 헤아릴 수 없는 응용을 가져온 아름다운 예이다.

다니야마 유타카 (Y. Taniyama, 1927-1958)

일본의 수학자. 1955년 국제 심포지엄에서 “모든 유리수체상의 타원곡선은 모듈러이다"라는, 훗날 ‘다니야마-시무라 추측’으로 불리는 장대한 추측의 원형을 28세의 젊은 나이에 제창했다. 이 추측은 나중에 전혀 무관하다고 여겨졌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기 위한 최대의 돌파구(가교)가 되었다. 그러나 천재적인 번뜩임으로 수많은 아이디어를 낳았던 다니야마는 약혼 중이던 1958년에 31세로 돌연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그의 유지는 절친 시무라 고로 등에게 인계되어 현대 정수론에서 가장 중요한 초석 중 하나가 되었다.

알렉산더 그로텐디크 (A. Grothendieck, 1928-2014)

프랑스의 수학자. 스킴 이론, 토포스 이론, 모티브 등의 장대한 개념을 도입하여 20세기 후반 대수 기하학의 풍경을 근본부터 다시 쓴 최대의 거인. 그의 철저한 일반화와 추상화의 기법은 현대 수학 전체에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미쳤고, 베유 추측의 해결에도 결정적인 길을 닦았다. 1966년에 필즈상을 수상하지만, 군사 연구에 대한 반발로 수학의 앞무대에서 돌연 사라져 피레네산맥 기슭에서 은둔 생활을 보냈다.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미출판 초고를 남겼으며, 그 사상은 지금도 수학계 곳곳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시무라 고로 (G. Shimura, 1930-2019)

일본의 수학자. 프린스턴 대학 명예교수. 절친이었던 다니야마 유타카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모호했던 직관을 ‘다니야마-시무라 추측’이라는 엄밀한 수학적 정식화로 승화시켰다. 이 추측은 앤드루 와일스에 의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증명의 열쇠가 되었다. 그 외에도 수론 기하학에서의 아벨 다양체의 허수 승법론이나 보형 형식의 연구에서 다대한 업적을 남겼고, ‘시무라 다양체’ 등에 그 이름을 남긴다. 매우 엄격하고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성격으로 알려져, 자저 속에서도 수학의 정확성에 대해 엄격한 자세를 일관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H. Hironaka, 1931-)

일본의 수학자. 1970년에 고다이라 구니히코에 이어 일본인으로서 두 번째로 필즈상을 수상했다. 대수 기하학에서 지극히 난해한 문제로 여겨졌던 ‘표수 0의 체상의 대수 다양체의 특이점의 해소’를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복잡한 논증 끝에 훌륭하게 증명해내어, 그 후 대수 기하학이나 특이점론의 발전에 강렬한 임팩트를 주었다. 스스로를 ‘투박한 노력형’이라고 칭하며 하나의 문제에 철저하게 집착하여 끝까지 생각하는 자세를 일관했다. 또한 ‘수리과학진흥회’를 설립하는 등 젊은 세대의 수학 교육이나 젊은 연구자 육성에도 열정적으로 임했다.

베이커 (A. Baker, 1939-)

영국의 정수론학자. 1970년 국제 수학자 회의에서 히로나카 헤이스케 등과 함께 필즈상을 수여받았다. 대수적 수의 대수의 선형 형식에 대한 자명하지 않은 하한을 부여하는 ‘베이커의 정리’를 증명하여 초월수론에 획기적인 비약을 가져왔다. 이 강력한 정리에 의해 디오판토스 방정식의 정수해의 상한이 계산 가능해졌고, 가우스의 유수 문제(유수가 1인 허이차체의 결정)의 해결 등 오랫동안 미해결이었던 문제들이 속속 풀리게 되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오랫동안 정수론 연구를 주도했다.

와일스 (A. Wiles, 1953-)

영국 태생의 수학자. 이와사와 이론이나 버치-스위너턴-다이어 추측 등 수론 기하학의 중요 과제에서 큰 공헌을 했다. 10살 때 도서관에서 만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매료되어 수학자가 되어서도 비밀리에 7년간 고독한 연구를 계속했다. 1993년에 증명을 한 번 발표했으나 결함이 발견되었고, 고난 끝에 옛 제자인 리처드 테일러의 협력도 얻어 1995년에 완전한 증명을 출판하여 350년 이어진 수학사 최대 난제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위업으로 특별상으로서 필즈상 은명판을 받았다.

팔팅스 (G. Faltings, 1954-)

독일의 수학자. 1983년 28세의 나이에 대수 기하학 및 수론 기하학에서의 초난제였던 ‘모델 추측(종수가 2 이상인 대수 곡선상의 유리점은 유한 개밖에 없다)‘을 증명하여 전 세계 수학자들을 경탄하게 했다. 이 업적으로 1986년에 필즈상을 수상. 더욱이 샤파레비치 추측이나 테이트 추측 등도 단숨에 해결하여 그로텐디크가 구축한 추상적 이론의 강력함을 입증했다. 극히 엄밀하고 깊은 통찰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도 수론 기하학의 최고봉에 군림하는 연구자 중 한 명으로서 후진에게 다대한 영향을 계속 주고 있다.

참고문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풀렸다! 오일러에서 와일스의 증명까지 고단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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